본문 바로가기
교육학

마리아 몬테소리의 생애와 사상, 첫번째 이야기

by 파르나소스의 헬렌 2023. 4. 3.

"교육의 비밀은 사람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데 있다.

즉 사람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사랑하며 그것을 봉사하되, 창조자의 위치가 아니라 피조물의 위치에서 돕고 함께 일하는 데 있다. 우리는 신적인 작용에 힘을 더해야 하지만 그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Maria Montessori

 

1. 마리아 몬테소리의 생애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의학 박사이자 교육학자이며 여성과 아동의 인권 운동가로 전 세계 유아 교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자신의 교육학적 발견과 방법을 가톨릭교회에 적용을 시도하고 실천한 종교교육가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정신 지체아를 치료하던 중 지체아는 의학적인 치료가 아닌 교육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SeguinItard의 방법에 도움을 받아 몬테소리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 방법을 발견하여 전개하였다. 이러한 몬테소리의 독특한 교육이 알려지면서 유아 교육계의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 후 몬테소리는 자신의 교육을 정상아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산 로렌조에 최초로 어린이집(Casa dei Bambini)을 설립하고 정상아들에게 자신의 독특한 교육 방법을 적용하여 교육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곳에서 몬테소리의 교육적 성공은 전 세계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 자신의 교육 사상과 방법을 저술과 강연, 그리고 몬테소리 교사 양성과정을 통하여 전파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몬테소리의 교육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하였으며 유아 교육과 현재의 교육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몬테소리가 발견한 교육은 모든 세계의 유아에게서 나타나는 발달 단계의 법칙성을 드러냈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교육의 현장에 적용되어 교육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녀의 교육은 의사이자 과학자의 자세에서 비롯된 관찰과 발견의 교육이지 인간의 철학과 사상에서 만들어진 교육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떠한 배경과 경험들이 이러한 교육적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그녀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을 몇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80년 10세의 몬테소리>&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1886년 16세의 몬테소리>

1) 유년기와 성숙기(1870~1890)

마리아 몬테소리는 1870년 이탈리아가 단일 통일국가가 되던 해에 태어났다. 이때 이탈리아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소망으로 가득했으며 독립 국가로서의 경제적인 낙관주의가 팽팽해 있었다. 그러나 정치는 과도기적인 시대로 낙후된 군주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시점에서 학교 교육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움을 가지고 있던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교육 개혁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복고주의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려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이 양극화되어 있던 시기에 마리아 몬테소리는 태어났다.

이러한 모습은 마리아 가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적 기질을 가진 전형적인 군인 출신의 일급 공무원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지주의 딸로 매력적인 용모를 지녔으며, 많은 교육을 받아 총명한 여인이었다. 그 당시 여성들의 형편이 본인의 이름만 써도 자랑거리가 되는 시대였으나 마리아의 어머니는 그 마을의 모든 책을 통달한 진보적인 여인이었다. 마리아가 의지가 강하고 개혁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가정환경도 한몫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머니는 어린 마리아를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으며 자녀 교육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딸에 대해 넘치는 애정을 가지고 양육했고, 그 안에서 마리아는 확실한 주관과 의지의 소유자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875년 아버지 알렉산드로가 로마로 전근하면서 마리아의 가족은 로마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문화의 중심지요 수도인 로마에서 7살의 마리아는 공립학교에 입학하여 보다 나은 교육적 환경을 접할 수 있었다.

188313살이 된 마리아는 기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아 기술자가 되기를 원하여, 남학생들만 가는 공업 기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버지의 반대는 강하였지만, 어머니의 찬성과 지지로 마리아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고, 1886년 우수한 성적으로 공업 기술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공업 기술학원에 입학하여 4년 동안 언어와 자연과학을 배웠다. 가장 뛰어난 과목은 수학이었는데, 졸업할 무렵 그녀는 엔지니어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생물학에 관심을 보이며 의과대학을 지망한다.

 

2) 학문적 기반과 성숙기(1890~1907)

당시 사회적으로 젊은 여성이 의과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의사에 대한 소망을 만류하고 반대했으나, 어머니는 마리아를 향하여 적극적인 지원과 꾸준한 격려를 하였다. 마리아는 일반 사람들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어머니의 격려와 교황 레오 8세의 도움을 얻어 입학 허가를 위하여 끊임없이 도전하였다. 결국 1890년 마리아는 의학과장인 Bacceli의 도움을 받아 4년의 해부학, 병리학, 병상 학과 2년의 연구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계속되는 반대와 동료 학생들의 노골적인 적대감, 몇몇 반여성주의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깊은 고통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마리아는 이 끝없이 어려운 상황과의 투쟁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시체해부실을 나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공원을 걸어 집으로 가던 중, 3세 무렵의 어린아이를 안은 여자 걸인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구걸하는 어머니를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나 만족하고 평온한 얼굴로 색종이 조각을 가지고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발견한 마리아는 깊은 충격과 더불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명감, 소명감을 느끼게 되고, 그 순간 이후 자신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걸으리라 결단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뛰어난 학업성취로 장학금을 받게 되고, 차츰 다른 학생들도 마리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알렉산드로도 딸의 강의에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칭찬 들으며 뛰어난 강의를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토록 소원하였던 관계를 청산하고 마리아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1896, 96페이지에 달하는 편집병이라는 신경 질환에 대한 논문을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며, 로마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이후 대학 부속 병원인 San Giovani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1897년 로마대학교 정신병원에서 연구하는 가운데 정신이상자 수용소의 어린이들이 빵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이 유아들이 단순히 먹는 것 자체보다 다른 더 높은 갈망, 즉 손을 사용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어린이들은 먹을 것에 굶주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다루는 무엇인가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교육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어린이들도 만일 손을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무엇인가를 주면 교육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후 의학적인 견해에서 교육학적인 소명으로 어린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교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리아 몬테소리의 생애와 사상, 두번째 이야기  (0) 2024.01.10

댓글